꺽일지언정 휘어질 줄 모르는 사람
강석진 회장도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가 아주 젊던 일제시대 때 좌천동에 살던 집을 헐고 새집을 짓게 되었다. 당시 그 집은 누가 보더라도 입을 벌릴 정도로 크고 좋은 집이었다. 이를 보고 이웃에 살던 일본인 하나가 부럽기도 하고 질투심도 났던지 터무니없는 까탈을 부리며 무고를 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경찰서에 연행되어 얼마간 구류된 적이 있는데 어느 날 아침 세수를 하고 있던 참에, 형사들이 대문으로 들이닥쳐 연행하려 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영문도 모르는 강석진 회장은 그 연유를 따져 듣고는 마음속에 집히는 데가 있어, 곁에 있던 부인을 향해 별일 없을테니 아침상을 올려라 하고 형사더러는 잠시 마루에 오르게 하였다. 이어 차려온 밥상을 받아 태연하게 밥 한그릇을 거뜬히 비우자 연행하러 온 형사가 어이없다는 듯 하는 말이 "내 형사노릇 십여년에 당신 같은 사람 처음 보오"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고 강석진 회장은 "죄없는 사람 잡아 가두려고 찾아오는 사람은 내 평생 처음 보오"하고 응수하였다.
범상한 사람이면 죄의 유무와 관계없이 잡으러 온 경찰관 앞에서는 대개가 겁에 질리기 마련이나 강석진 회장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가 훗날 그때 일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범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나도 정신을 차리려면 우선 배가 든든해야 한다. 그래야만 할말 다 할 것 아닌가? 추위와 굶주림에 견딜 장사가 어디 있나? 그래서 밥을 먹었지."
처변불경(處變不驚)이란 말이 있다. 어떠한 급박한 상황에서도 놀라거나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말이다. 80년 5월 강석진 회장은 어이 없게도 신군부에 의해 반사회적 악덕기업인으로 몰려 고초를 겪게 되었다. 이때 서슬이 퍼런 군부의 심문관 앞에서도 끝까지 위압과 기세에 굴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처사의 부당함을 항변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였다. 갖은 위협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는 그의 기개가 오히려 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결과를 낳았지만, 감출 것 없고 숨길 것 없는 터에 무엇 때문에 그들에게 살려달라 용서해 달라 빌 것인가? 어림없는 일이었다. 이와 같이 강석진 회장은 꺾일지언정 굽힐 줄 모르는 불요불굴의 강인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다.